작물일반

김치의 지역별 이름 방언과 배추김치의 변천과정

산들행 2020. 10. 10. 11:04

1926년부터 1932년까지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가 펴낸 《조선 방언 연구 朝鮮語方言の 硏究》에는 츠케모노(漬物, 지물, 채소 절임음식)의 발음이 전국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조사한 자료가 있다. 먼저 '김치'라고 발음하는 지역은 경성을 포한한 경기도 일부, 황해도 전역 그리고 함경북도 일부로 나온다. '침치'라고 발음하는 지역은 제주도 일부 지역과 전라남도 일부, 전라북도 일부,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강원도 대다수 지역, 그리고 함경남도 일대로 나온다. '침끼'로 발음하는 지역은 제주도의 성산과 서귀포, 대전 일대로 나온다. '깍두기'라고 발음한 지역은 함경남도 북청으로 나온다. '지'로 발음하는 지역은 전라남도의 순천 일대로 나온다. '짠지'로 발음하는 지역은 함경남도의 북청을 제외한 전역으로 나온다. 오구라 신페이의 조사에 의하면 1920년대 한반도에서 '침치'라고 부르는 지역이 가장 넓게 분포하고, 그 다음이 '김치'이다. 그 뒤를 이어 '짠지', '지', '침끼', 그리고 '깍두기' 순이다. 지금이야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적어도 1920년대만 해도 김치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채소 절임음식의 통칭이다. 1920년대에는 김치를 깍두기라고 불렀던 지역도 있었는데, 왜 오늘날 한국인들은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만 떠올릴까?

 

김장에서 배추는 가장 중요한 재료로 1910년대 이후 배추김치는 김장김치 가운데 으뜸이었다. 여기에는 조선에 이주해온 중국인들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1882년 임오군란때 청나라는 우창칭(吳長慶)을 내세워 4,500여 명의 군대를 서울로 보냈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 중국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제물포에서 노동으로, 서울에서는 비단과 잡화 판매로, 그리고 김포 일대에서는 배추농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배추와 품종이 다른 배추가 중국에서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배추김치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는 결구(結球)배추이다.

 

1931년에 발간된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 25주년 기념지》에서는 "재래 배추 중 유명한 것은 경기도 개성의 소위 개성배추와 경성의 경성배추 두 품종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부(芝罘)배추와 같은 결구성 배추 재배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재래종 재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지부'는 중국어로 '즈푸'로, 지금의 중국 산둥성 옌타이(煙臺)지역이다. 20세기 초반에 유명했던 중국 배추로는 지부배추를 비롯하여 산동배추·만주배추·금주배추 등이 있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결구배추의 이름이 '호배추'가 되었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조선 전역에서 결구배추인 호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서울배추든 개성배추등 간에 종래에 조선에서 먹던 반결구배추의 가장 큰 문제는 추위가 빨리 닥치면 11월 중순에도 얼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이에 비해 결구배추인 호배추는 속잎이 꽉 차서 얼더라도 겉잎을 떼어내면 먹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호배추는 그리 빨리 퍼져 나가지 못했다. 조선배추에 비해 호배추는 억세고 감칠맛이 적으며 우거지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조선배추에 대한 인기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 말이 되자 점차 호배추가 조선배추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조선배추는 통으로 절이는 것이 좋았다(통김치). 왜냐면 속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호배추는 둘로 쪼개서 소금물에 절여서 김치를 담갔고, 1990년대 이후 개발된 호배추는 한포기에 1kg이 넘어 4등분을 하여 소금물에 담가두어야 잘 절여진다. 1970년대 초반이 되면 시장에서 값비싼 재래종 배추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에 값싼 호배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0년대 초반이 되자 호배추로만 김장김치를 담갔다. 당연히 시장에서 조선배추는 찾기 어렵게 되었고, 호배추란 이름도 그냥 배추로 바뀌었다.

 

20세기 100년 사이에 진행된 조선 배추의 쇠퇴는 1970년대 이후 한국인의 김치 소비현상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부 가정에서는 김장 때 배추김치는 물론이고 동치미·섞박지·총각김치 따위를 함께 담갔다. 하지만 그 이후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집에서 담그는 김장은 주로 배추김치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배추김치는 품종도 조리법도, 맛도 많이 변했다. 이것이 지난 100년 동안 변화해온 배추김치의 현실이다.

 

- 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지음

- 발행처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1판 7쇄 발행일 2016년 12월 12일

- p 154~163

재래 배추

 

배추김치 담그는 과정 중 소금 절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