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콩

미국의 콩 도입과 콩 산업의 부흥 과정

산들행 2021. 6. 14. 08:03

북미로 콩을 가져다 최초로 심은 사람은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던 영국인 사무엘 보웬(Samuel Bowen)이었다. 보웬은 중국에서 보았던 콩 산업을 미국에서 사업화하기로 작정하고 1765년 미국 조지아의 사바나로 이주하여 콩을 심고 간장과 면 제조에 대한 특허도 신청했다.

북미에서 아시아식 콩 제품을 도입하고자 했던 보웬의 도전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미국농무부는 종자 및 식물 도입국(Office of Seed and Plant Introduction)을 설치하여 식물 종자 표본의 수입을 정식으로 시작했고 콩 연구에도 관심을 쏟았다. 미국농무부의 찰스 파이퍼Charles V. Piper)와 월리엄 모스(William J. Morse)는 자국에 새로운 콩 종자를 도입하려고 노력했고 팔먼 도셋(Palemon H. Dorsett)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콩 종자를 수집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콩의 산업 가능성을 발견한 기업가 아우구스투스 스테이리(Augustus E. Staley)가 나타나면서 미국의 콩 산업은 일대 전기를 맞는다. 그는 콩의 새로운 사업성을 발견하고 1922년 일리노이주 디케이터(Decatur)에 대두를 가공하는 최초의 공장을 세웠다. 그의 접근 방식은 장류, 두부, 템페(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콩 발효식품) 등 동양식 식품 제조가 아니라, 콩에서 기름을 생산하고 남은 대두박(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을 산업용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콩기름은 식용유로서 당연히 용도가 많지만(후에 이용하여 마가린과 쇼트닝을 만들면서 시장은 더욱 확대된다) 대두박은 전혀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었다. 대두박은 미국 중서부의 농장에서 소, 닭, 돼지의 사료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가축용 사료로 주로 사용되던 옥수수의 단백질 품질이 나빠(옥수수의 단백가는 47에 불과하다) 닭들이 서로 쪼아먹는 형편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육류 소비는 급증했고 따라서 대두의 수요도 증가했다. 스테이리의 대두 비지니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디케이터는 '세계 대두의 수도'라는 이름을 얻으며 콩 생산의 선두주자가 됐다.

이후 미국에서 콩 생산과 소비는 폭팔적으로 늘어났고, 이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콩 생산이 확산됐다. 미국농무부는 이 과정에서 월리엄 모스와 팔먼 도셋을 극동아시아로 파견하여 콩 종자를 수집토록 했다. 이때 도셋이 67세, 모스는 45세였다. 1929~1931년 그들은 한국, 일본, 만주, 중국에서 시장, 식료품점, 식물원, 대두 제품 공장을 돌며 자생종을 포함하여 총 4, 451점의 콩 유전자원과 300여 종의 콩 제품을 수집하여 귀국했다. 이중 986종은 여전히 미국유전자원센터에 보관되어 있으니 이들의 아시아 콩 원정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런데 콩 원정대가 수집해간 유전자원 3,379점으로서 중국 동부 지방 이나 일본에서 수집한 577점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한반도에는 모스와 도셋이 놀랄 정도로 야생종과 재배종의 콩 종자들이 풍부했다. 바빌로프가 작물의 기원지에서 가장 다양한 작물의 유전자원이 존재한다고 했던 것처럼 한반도가 콩의 기원지임을 입증하는 이만한 자료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이외에도 외교관과 군인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콩 토종 종자를 수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 야생종 콩 종자 5,496점을 수집해갔다. 이리하여 우리나라의 콩 종자는 1만 점 정도가 미국에 건너갔고 현재까지도 미국농무부 대두유전자원센터에 4,000여 종이 보관되어 있다. 지금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두의 70퍼센트는 아시아에서 채집한 종자 35종을 개량한 것이며 그 가운데 6종이 한반도에서 채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종자를 농가에 무료로 보급했고 육종가들은 채유량이 많고 사료로 쓸 수 있는 품종을 개량해나갔다. 이리하여 미국은 세계 제일의 콩 생산국이 되었다.

 

- 사피엔스의 식탁, 인류가 선택한 9가지 식품

- 지은이 문갑순

- 펴낸곳 (주)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 1판 2쇄 발행 2020년 5월 4일

- p134-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