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의 바위굴과 새재우
먼 옛날 문경새재 길을 지나던 길손이 갑작스런 소낙비를 만나 바위굴로 피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바위굴에는 과년한 처자가 역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졌단다.
그 후 처녀가 아이를 낳아 십수 년이 흘렀는데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을 당하였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한 내력을 묻게 되었고 어머니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비의 엉덩이에 주먹만큼 커다란 검은 점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전국의 방방곡곡을 헤메던 중 어느 깊은 산골에서 세찬 호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근처의 주막에 들었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중년의 선비가 말하기를 "어허, 그 빗줄기 새재우 같구나"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새재우"가 무슨 뜻이냐고 물은 즉슨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같은 내용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자신의 내력을 밝히고 아버지를 모셔와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청춘남녀가 이 바위굴에 들면 사랑과 인연이 더욱 깊어져 평생을 헤어지지 않고 잘 산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문과는 달리 입구를 대나무 발로 막아 놓았다.
공주 반포면 서기와 공암굴
공암마을에 사는 아리따운 처녀가 논에 날아드는 새를 보던 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비를 피하여 공암굴로 피신했다. 이때 청벽나루에서 소금을 지고 이 부근을 지나가던 소금장수도 소금이 비에 녹을까 봐 급히 이 굴로 들었다. 굴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는 잠시의 사랑을 나눈 후 헤어졌는데, 인연으로 처녀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바로 그 아이가 고청 서기 선생이다. 고청이 점차 자라나자 어머니는 고청에게 아버지가 소금장수라는 사실을 알렸다. 청년이 된 고청은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집 옆에 참외를 심고 막을 세운 다음 행인을 쉬어가게 했다. 일일이 손님의 내력을 물어보던 중 어느 날 초라한 소금팔이 영감의 사연이 어머니가 말한 이야기와 일치되어 드디어 아버지를 찾았다. 이 후 고청은 아버지를 정성스레 모셨다고 한다.
고청 서기는 학문이 높았고, 충현서원(현 공암서원)에 배향되었다. 그의 호를 딴 고청봉은 계룡산 서쪽의 끝 봉우리로 대전에서 공주가는 32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박정자를 지나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의 우측에 있는 봉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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