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보리 가공시설 확충에 얽힌 이야기
1970년대 후반에 들면서 보리의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경지의 이용률은 떨어지면서 농한기 생산화가 격감됨으로써 농가소득에도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기반이 붕괴되면 복고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리 문제가 농정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맥류의 재배면적은 1970년도에 883,389ha이던 것이 1979년에는 489,107ha로 45%나 감소하였고, 경지이용률은 151%에서 132%로 떨어졌으며, 소득은 타작물에 비하여 월등히 낮기 때문에 농민들이 재배를 기피하였다. 또한 보리쌀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은 1970년 37.3kg에서 1979년에는 14.1kg으로 62.2% 감소하였다. 농촌 노동력의 도시화가 가중되고 있었으며, 손쉬운 보리농사를 할 수 있는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맥류의 재배면적을 유지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만 경제발전과 더불어 맥주의 소비는 늘고 있었기 때문에 맥주보리를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맥주 소비 증가로 맥주보리의 수요량은 급증하는 추세였으며, 국내 생산량으로는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으므로 맥주보리의 확대 재배 가능성은 충분하였다. 그러나 맥주회사에서는 국산 맥주보리 가격이 수입산보다 높기 때문에 국산 맥주보리 소비를 기피하였다. 또한 수매량이 늘어나면 보관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료관리에 어려움이 커가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농수산부에서는 맥주보리 가공시설 증설문제를 업계와 여러 차례 협의하였으나 추가 시설을 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산 보리를 사용하는 만큼 이익이 적어지는데 기업이 손해 보는 일은 할 수 없다는 업계의 주장이었으며, 맥주의 소비세율을 인하해 주든가, 저리의 맥주보리 가공시설 자금을 지원하고 저리의 수매자금을 지원해 주면 가공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맥주의 소비세율 인하를 재무부, 국세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한 결과 주세가 우리나라 세입의 주요 세원이므로 세율 이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부득이 맥주보리 가공시설을 융자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 대기업의 대표격인 맥주회사의 가공능력은 1979년에 44,800톤이었으나 1989년에는 143,500톤을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을 증설하였다. 또한 맥주보리의 수매량도 늘어나 1985년에는 158,400톤을 수매하였다. 1980년부터 수요량 증가에 맞추어 시설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1980년부터 맥주보리의 자급이 이루어졌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세계올림픽 수요에 부응하는 맥주를 생산할 수 있었다. 맥주보리의 수매량은 17959년 55,578톤에서 1985년 158,399톤으로 185% 증가하였고, 1996년에도 115,763톤을 수매함으로써 1979년 대비 108% 늘어난 것이다. 맥주보리 가공시설의 확충효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89년부터 맥주보리를 다시 수입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 맥주보리의 자급률은 50% 이하로 낮아졌다. 맥주보리 수습상황은 1970년대 후반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새로운 정책이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수급상황이 1970년대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 김윤선 에세이
- 자연속 한 줌 티끌일지라도
- 펴낸곳 : 월간 과학원예
- 초판 1쇄 발행/1998년 11월
- 값 7,000원
- p 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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