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정부에서 시작된 쥐잡기운동을 식량안보 차원에서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추진해 갔다. 쥐가 먹어치우는 쌀은 연간 300만 섬(1년 생산량의 10%)이나 돼 쥐잡기는 식량안보와 직결된 절실한 과제였다.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혼분식을 장려하는 내용과 함께 쥐를 잡자는 내용의 <대한뉴스>가 반영됐다. 정부는 행정조직인 통과 반, 면 등을 통해 집집마다 쥐약을 나눠주고 전국적으로 일시에 쥐약을 놓도록 했다. 동네 곳곳에는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한 집에 한 마리만 잡아도 수만명이 먹고산다’ 등의 구호가 적힌 선전물이 요란스럽게 나붙었으며, 시골지역에서는 동네 이장들이 가을녘 추수 때만 되면 ‘쥐를 잡아야 우리나라가 잘 살수 있다’고 확성기에 대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쥐잡기 운동은 수출산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이 대두될 만큼 당시 한국은 ‘쥐의 천국’이었고, 쥐잡기 운동을 통해 잡아들인 쥐에서 깍은 털을 붙여 만든 밍크코트를 외국에 수출해 적잖은 외화를 벌어들였던 것이다. 이른바 ‘코리안 밍크’였다. 쥐털이 외화 획득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큰 역할을 하지 박정희 정부는 인구비례에 따라 직접 도지사들에게 각 도별로 잡아야 할 쥐 숫자를 할당하기도 했다.
쥐잡기는 가족이 총출동해야 하는 전쟁이었다. 학생들 역시 쥐잡기 전쟁의 훌륭한 전사들이었다. 매년 봄과 가을 쥐잡기 철이 되면 초중고교 학생들은 쥐잡기 포스터를 그려야 했고, 한 달에 몇 마리씩 잡은 쥐의 꼬리를 학교에 가져가 쥐잡기 실적을 검사받아야 했다.
- 쌀밥전쟁
- 김환표 지음
- 펴낸곳 : 인물과 사상사
- 초판발행 : 2006. 7. 14
- p129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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