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끊임없이 차별화 시도는 인간의 숨길 수 없는 본능 가운데 하나이며, 그런 구별짓기의 가장 초보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는 음식이다.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는 프랑스 미식가의 말처럼, 음식은 취향은 물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읽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생계비에서 차지하는 쌀값의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한국인들은 쌀을 통한 본격적인 ‘구별짓기’에 돌입하고 있었다. 쌀만은 좋은 것을 먹겠다는 생각이었다. 쌀을 매개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고자 했던 소비자들의 쌀 소비 형태는 통일벼 외면은 물론이고 일반미 가운데서도 미질의 우열을 따지는 경향마저 잉태했다.
일반미 파동을 주도한 것은 경기미였다. 한국인들, 그 가운데서도 중상류층 이상의 가정에서 팽배해지기 시작했던 쌀을 매개로 한 ‘구별짓기’ 정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경기미 열풍’이라는 생경한 풍경을 낳았는데, 특히 이즈음에는 경기미 가운데 포천과 이천, 김포 등지에서 생산되는, 이른바 ‘경기특미’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경기특미는 전체 미곡 생산량의 3.6%로 이는 서울 시민들의 40여 일 소비량에 해당하는 극히 적은 양이었다. 그런데도 싸전에서는 연중무휴로 경기특미라는 이름의 쌀이 공급되는 기현상마저 초래되고 있었다. 물론 이 역시 양곡상의 농간이었다. 양곡상들은 호남에서 생산된 미질 좋은 쌀을 사들여 평택이나 이천, 여주를 거처 서울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세탁을 통해 경기특미로 둔갑시켜 판매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미국산 칼로스쌀은 쌀을 매개로 한 구별짓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사례로, 당시 칼로스쌀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입증하는 일종의 계급장 역할을 독특히 수행했다. 애초 미군이나 미군 가족을 통해 서울의 이태원, 한남동, 동두천 등 미군부대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암거래됐던 칼로스 쌀은 농약도 적게 치고 맛이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서울 강남의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 급속하게 확산됐다.
쌀밥전쟁
김환표 지음
펴낸곳 : 인물과 사상사
초판발행 2006.7.14.
값 8,500원
p187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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