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쌀은 恨(한)의 대상이었다. 일제의 수탈로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놓고도 기아 상태를 면할 수 없어 초근(草根)과 木皮(목피)는 물론이고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으로 허기를 면해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쌀밥 한 공기는 꿈에도 그리던 소원이었다. 쌀은 사회적 부를 가름하는 기준이자 물가를 측정하는 잣대이기도 했다.
쌀은 항상 부족했다. 쌀이 부족하다 보니, 1970년대 말까지 정부의 주된 관심은 증산과 함께 언제나 쌀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 검사가 벌어졌고,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밥에는 잡곡을 몇 퍼센트 넣으라는 정부의 지시가 수시로 떨어졌다.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마저 전개해야 했을 만큼 쌀을 아끼기 위한 투쟁은 총력적으로 전개됐다. 정부의 쌀 소비 억제 정책은 쌀밥 식단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밀가루가 들어오자 식생활 개선이란 명분 아래 대중매체까지 총동원 돼 밀가루가 쌀보다 훨씬 더 영양가가 높다는 내용의 밀가루 예찬론이 전국을 뒤덮은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식성 개조 운동까지 전개했지만 쌀을 향한 한국인들의 애정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아니, 그럴수록 눈덩이처럼 흰 쌀밥을 더욱 간절히 원했다. 쌀에 맺힌 한국인들의 한은 군사 작전식으로 전개한 증산 운동에 힘입어 쌀의 자급자족에 성공한 1977년에 가서야 풀렸다. 한국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쌀 자급은 대풍을 기념하는 탑을 세웠을 만큼 국가적인 경사였다.
많은 이들이 쌀을 민족의 혼이요, 생명줄이라고 이야기 한다. 쌀이 한국인의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을 감안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쌀을 생산하는 농촌과 쌀을 소비하는 도시의 이해관계다. 일찍부터 쌀을 둘러싼 농촌과 도시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았다. 해방직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저미가 식량정책은 본질적으로 도시 위주의 식량정책이었다. 농촌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저미가 정책을 강요받아야 했고, 노동자들 역시 알게 모르게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구한 낮은 쌀값 정책을 지지하게 되었다. 도시 위주의 식량정책은 자연 농촌의 희생을 강요로 한 것이어서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직후만 해도 한국 쌀을 살려야 한다는 한목소리를 내던 도시인들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은 지는 벌써 오래됐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 쌀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공산품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외국에서 값이 싼 쌀을 사 먹자는 쌀 시장 개방론자들의 주장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니까 쌀 시장 개방과 농촌의 황폐화는 한국형 경제성장이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기도 하지만 산업화 시대부터 형성된 도시인에게 만연한 이중적인 농촌관이 낳은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쌀도 상품인 이상 경제논리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쌀을 외국에서 사다 먹자는 주장에는 빼놓을 수 없는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식량안보이다. 식량안보는 농민의 생존권 보장과 함께 한국 쌀을 지켜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세계 곡물 생산량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반면 인구 증가로 인해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식량 안보가 식량 수입국가들의 화두로 부상한 게 작금의 실상이다. 국제무대에서 이렇듯 쌀이 중요한 물건으로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식량안보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천하태평이다. 소수의 곡물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 쌀 시장에서 세계 식량파동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지, 진정한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왜 이렇게 약한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계적인 식량 기근이 발생했을 때 후회해야 만시지탄이다.
- 쌀밥전쟁
- 김환표 지음
- 펴낸곳 : 인물과 사상사
- 초판발행 2006.7.14.
- 값 8,500원
- p242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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