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에 자국의 농부들이 과잉생산한 농산물을 사도록 강요했다. 그 근거는 'MSA(Manual Security Act)-402조'란 법이다. 1954년 기존 상호안전보장법(MSA)을 개정하면서 원조를 제공받는 국가가 원조액 가운데 일정액을 미국 잉여농산물 구매에 쓰도록 규정한 것이 402조이다.
미국 정부는 제 2차 세계대전 반발 전에 농촌의 경작체제를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시켰는데,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과잉생산이 발생했다. 그런데 마침 세계대전이 반발해 미군들이 참전하게 되면서 잉여농산물은 군인들의 식량으로 소비되었다. 그리고 전후에는 군사동맹을 내세워 서유럽에 농산물 수입을 강요했다. 그러나 전후 프랑스와 독일은 3년도 채 되지 않아 전쟁으로 망가진 농촌을 복구해 점차 미국산 농산물 수입량을 줄여나갔다.
그런 와중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반발해 잉여농산물의 또다른 소비처가 되었다. 하지만 휴전 이후에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겨난 법이 'MSA'였는데, 다시 이 법을 개정해 강제 구매 조항 402조까지 추가했다. 아울러 1954년 7월 미국 의회는 PL-480호를 제정했다. 이 법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의 빈곤층 원조, 재해구제 원조, 그리고 학교급식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1955년 이후 한국의 국민학교에 식빵과 밀가루가 무상으로 공급되었다. 이때부터 밀가루를 재료로 한 수제비, 칼국수, 잔치국수와 같은 음식이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끼니로 식탁에 올랐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들어오면서 밀가루, 설탕, 면직물의 3백(三白)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식품산업도 제분업과 제당업을 통해서 그 기반을 다졌다. 특히 제3공화국이 줄기차게 추진한 혼분식장려운동은 밀가루 음식의 소비를 더욱 부추겼다. 분식점이 유행처럼 생겨났고, 한국인들은 칼국수, 우동, 쫄면, 만두와 같은 밀가루로 만든 갖가지 음식을 분식집에서 즐겼다.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분식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칼국수나 수제비로 대표되던 밀가루 음식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빵이나 샌드위치 따위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인의 식탁에서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류 음식을 좋아하고 밥처럼 먹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풍부해진 밀가루 때문이다. 지난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밥과 밀가루 음식이 비슷한 비중으로 끼니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 지은이 이영하
- 식탁위의 한국사
- 발행처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1판 4쇄 발행일 2014년 1월 6일
- p 470 - 476
- 값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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