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영조의 식성과 조기, 보리밥, 고추장

산들행 2016. 7. 9. 07:51

영조의 식성과 고추장 사랑

전근대 조선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조선의 음식문화를 살피는 데 있어서 임금의 밥상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임금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문화에서도 맨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임금의 식사는 비교적 세세히 관찰되고 기록되었다.(p143)

 

조선 후기 문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8세기 조선에는 모두 네 임금이 있었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다. 이 가운데 영조는 18세기의 한가운데를 절반 이상 통치한 임금이다. 무려 53년 동안 집권했다. 『승정원일기』는 먼저 영조의 식성에 대해 먹는 음식의 양이 적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는 기본적으로 소식을 했다. 또 면을 즐기지 않았고 때때로 타락죽을 먹었다. 영조는 절편과 병자 등 군것질마저도 좋아하지 않았다. 영조의 약한 소화력은 그가 꺼린 음식으르도 짐작이 된다. 영조는 차고 설익은 음식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영조는 냉면을 잘 먹지 못했다.

 

영조가 즐긴 맛은 담백함이다. 생선으로는 조기를 좋아했다. 조기는 한자로 석어(石魚)라고 하는데, 어떤 신하가 영조에게 석어를 우리말로는 조기(助氣)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조가 조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임금 뜻에 맞추기 위해, 조기가 기운을 돕는 데 좋다고 말한 것이다.

영조는 또한 보리밥(麥보리 물 수 찌를 자)를 좋아했다(승정원일기, 1730. 5. 17). 보리밥은 주로 여름철에 먹는데, 물에 말아 먹는 일이 많았다. 민간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영조도 보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 아마 간간한 조기를 반찬으로 삼았을 것이다.

영조처럼 식욕이 떨어진 사람은 입맛을 돋우는 일이 중요하다. 영조는 간간한 조기와 시원한 김치를 좋아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떨어진 입맛을 살리지 못했다. 먼가 더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다.  칠십대 중반을 넘어선 노인 영조가 어느 날 오래간만에 잘 먹었다. 영조가 말했다.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은 네 가지 별미라, 이것들 덕분에 잘 먹었다. 이로서 보면 아직 내 입맛이 완전히 늙지는 않았나 보다(승정원일기 1768. 7. 28). 여기서 열거한 식재료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고추장이다. 고추장은 단순히 매운맛만 있지 않다. 매우면서도 달콤하다.

 

영조는 1749년 7월 24일 처음 고추장을 언급햇다. "옛날에 임금에게 수라를 올릴 때 , 반드시 짜고 매운 것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나도 천초(川椒) 같은 매운 것과 고추장(苦椒醬)을 좋아하게 되었다. 식성이 점점 어릴 때와 달라지니 이것도 소화 기능이 약해져서 그런가?"

스무 해 가까이 이어진 영조의 고추장 사랑도 노인이 되어 약해지는 입맛에는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내의원 조제조 김치인이 근래에 올리는 고추장이 어떠냐고 물으니, 영조는 이것도 이제는 물렸다고 대답했다(승정원일기 1969. 6. 17.). 고추장이 더이상 영조의 입맛을 돋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영조는 조종부(趙宗簿)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좋아했다. 참고로 밝히면 조종부의 본관은 순창이다. 흔히 말하는 '순창 고추장'의 연원이 조종부 집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은 고추장의 매운맛과 감칠맛에 중독되어 갔다.

(영조의 식성과 고추장 사랑, 정병설 글, p144 ~ 149)

 

 

<규합총서>에서는 우리나의 전통 음식문화를 한 문장으로 대변하고 있다.

"밥 먹기를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마시기는 겨울같이 하라"고 했다.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게 즐겨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조선인이 즐긴 술, 삼해주 : 장민 글, p241)



- 18세기의 맛 

- 안대회, 이용철, 정병설 외 지음

- 펴낸곳 (주)문학동네

- 1판 2쇄 2014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