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1760~1815, 영조 36~순조 15)이 쓴 『백운필(白雲筆, 1702년)』에 담채(談말씀 담 菜나물 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담채는 이름 그대로 채소의 이름·종류·재배법·맛에 관한 글로서, 그중 고추와 호박은 “채소 가운데 매우 흔하고 두루 재배하면서도 옛날에 없던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초(艸풀 초 椒산초나무 초)는 곧 일명 ‘만초(蠻오랑케 만 椒)’로서 속칭 ‘고추(苦쓸 고 椒)’라 하고, 왜과(倭왜국 왜 瓜오이 과)는 곧 일명 ‘남과(南瓜)로서 속칭 ’호박(好좋을 호 朴후박나무 박)‘이라 한다. 이 두 가지는 대개 근세(近世)에 외국에서 전해진 것이다. 옛 《<본초(草艸)》와 다른 책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새로 한반도에 유입된 이 두 가지 채소 중에서 이옥은 고추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그는 겨자장보다 고추장을 더 즐겨 먹었다.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연거푸 술을 몇 잔 마시고 손으로 시렁위의 붉은 고추(紅붉은 홍 椒산초나무 초)를 집어서는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醬젓갈 장)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흠칫 놀라며 두려워했다. 남양(南陽)에 살게 되면서 가루를 내어 양념장을 만들어 생선회와 함께 먹는데, 역시 겨자장(黃누를 황 芥겨자 개 汁즙 즙)보다 나았다".
이렇게 고추를 좋아했던 이옥은 남양 집의 채마밭 근처 조그만 땅에다 고추를 심었다, 고추는 16세기 말에 한반도에 유입되었는데, 200년 가까이 흐른 18세기 중반에 와서야 즐겨먹는 식재료가 되었다.
- 조선의 미식가들 - 지은이 주영하 - 발행처 (주)휴머니스트출판그룹 - 1판 2쇄 발행일 2019년 8월 19일 - p108~109 |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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