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육식이 일반화된 14,15세기경부터 후추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같은 매운 맛의 향신료인 고추의 사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럼 후추 이전에는 어떤 향신료가 쓰였을까? 문헌을 확인해보니 산초, 생강, 자소, 겨자, 여뀌, 미나리 등이 보인다.
일본어에 "벌레가 매운 여뀌를 먹는 것도 제 취향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뀌가 향신료로 쓰였다니 흥미롭다. 여뀌는 김치에 넣기도 하고 향신료나 조미료로 쓰기도 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 《여뀌꽃에 백로(蓼花白露 요화백로》에 등장할 정도로 일반적인 채소였다.
산초도 흔히 사용되었다. 한자로는 천초(川椒)로 쓰며, 생선요리 특히 추어탕과 같은 민물요리에는 지금도 산초가 쓰인다. 김치에도 산초를 넣은 기록이 있다. 17세기 말경에 간행된 요리전문서인 《요록(要錄)》에는 오이 종류의 김치에 넣는 양념 중에 산초가 들어있다. 이는 중요한 사실이다. 김치에 고추가루를 사용하기 전에 산초를 향신료로 썼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김치에 매운 고추가 들어가는 기초가 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나온 문헌을 보면 아직 김치에 고춧가루가 사용되지 않았다. 18세기 초에 간행된 《산림경제》에 비로소 고추재배법이 등장하고, 18세기 중기나 돼야 고추를 사용한 예가 나온다.
오늘날 한국요리에 매운 요리가 많지만 그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서 후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추의 매운 맛이 정착하는데 여뀌나 산초가 향신료로 쓰였다는 점보다 후추가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됐다는 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4, 15세기에 육식이 정착되었다. 후추는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는 방부제 역할도 하며 고기의 맛을 돋우어주기 때문에 고기요리에 딱 좋은 향신료였다. 후추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조선은 일본의 침략(임진왜란)으로 후추를 구할 수 없었다. 마침 임진왜란 전후해 어찌된 일인지 남만의 고추가 조선에 전래되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시기는 17세기 초로 보인다. 그런데 고추가 일반요리에 쓰이기까지는 그로부터 약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 약 100년 동안 고추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은 수입이 곤란해진 후추의 대타 역할을 대신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임진왜란으로 일본과 교역이 끊기고, 내부적으로 경제력이 피폐해져 후추를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내에서 고추 생산이 가능하게 되자 점차 후추 대신에 고추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치에 산초나 여뀌를 넣거나 갓으로 김치를 담그는 등 이미 매운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김치에 고추를 넣는 것도 수월했을 것이다.
이렇게 교역과 전쟁, 식풍습 등의 요인이 얽히고 설키어 17세기 이후 고추가 새로운 향신료로서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됐다. 그 최대 요인은 무엇보다도 육식을 먹는 습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겠다. 육식민족인 몽골족이 가져온 육식요리의 영향은 단순히 보급되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항신료 사용법의 개발로 이어졌다.
한국요리에 쓰이는 고추는 육식의 도입과 관련되어 정착됐지만 한국음식이 전부 다 매운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며, 고추가 들어오기 전의 요리는 맵지 않았다는 것을 부연해 둔다.
나물 종류도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무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신선로'는 맵지 않다. 특히 관혼상제와 같이 격식을 갖춘 상에 내는 음식에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 고추가 도입되기 전에 이미 그런 격식이 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 음식문화의 지혜
- 정대성 지음 / 김경자 옮김
- 펴낸곳 역사비평사
- 제1판 제1쇄 2001년 4월 30일
- p8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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