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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창조된 경기미 신화 : 아키바레에 대한 동경과 '임금님 쌀' 전설

1970년대를 거치며 소득 수준이 크게 높아진 대도시 소비자를 중심으로 '경기미'에 대한 수요가 폭팔적으로 늘어났다. 1979년에 이미 부유층이 무공해 쌀을 기준 수매가의 두 배 가까운 가격에 계약재배하여 먹는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개탄조로 보도되기도 했다. 1983년에는 통일쌀이 대부분인 정부미 가격은 떨어지는데도 일반미 가격은 겨우내 30퍼센트 가까이 급등하는 '일반미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반미 선호는 곧 아키바레 선호였고, 아키바레는 경기도에서 특히 널리 재배되고 있었으므로, 일반미 선호는 이내 경기미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과 접목되어 '경기미 열풍'으로 진화해나갔다. '경기미 열풍'은 1980년대 중반 미군부대 상점의 칼로스(Calrose) 유출과 더불어 상류층의 사치를 상징하는 시건으로 언론..

벼, 쌀 2021.09.07

분식의 두 모습 : 쌀의 열등한 대체품인가, 서구 문화의 총아인가

1980년대 초까지는 없어서 못 먹던 쌀을 양껏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면 그 뒤에는 쌀에 대한 갈망을 풀었으니 다른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이와 같은 욕구의 다변화는 국민소득의 성장과 더불어 그 속도가 빨라졌다. 이렇게 쌀이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밀의 위상도 서서히 변화해왔다. 밀에 대한 기억은 크게 두 갈래로 형성되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쌀의 열등한 대체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범주인 '양식'으로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자기 자리를 점해나갔다. 한반도에 자생 밀은 있었다. 뒷날 멕시코와 인도의 녹색혁명을 이끈 '난쟁이 밀'의 육종 재료로 노먼 볼로그가 이용한 반왜성 밀 '노린(農林10호'는 일제강점기 수집된 한반도 '앉은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