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 나오는 진도 구기자술
하루 종일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저녁 바다는 거칠었다. 인광의 칼날들이 어둠 속에서 곤두서고 쓰러졌다. 캄캄한 바다에서 칼의 떼들이 부딪혔다. 물보라가 수영 안마당까지 날아들었다. 섬도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연안의 읍진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서 닿을 수 없이 멀리 보였다. 밝는 날 녹진, 금갑진, 벽파진, 남포, 가리포가 그 오목하고 잘룩한 포구에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배를 끌어올려 놓고 종일 종사관 김수철의 복명 보고서를 읽었다. 김수철이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진도 구기자술 한 되와 마른 가자미를 가져왔다. 김수철과 늦게까지 마셨다.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는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담대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