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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 메밀의 차이점

우리에게 밀보다 더 친숙한 것은 메밀이다. 메밀은 건조한 땅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잘 자라 어디에서든 쉽게 재배할 수 있다. 벼와 재배지가 겹치지 않고 오히려 산간에서 벼의 대체 작물로 기를 수 있으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메밀'은 여러 모로 이상한 이름이다. '메밀'의 '메'는 '찰기가 없어서 메지다'는 뜻이니 '메밀'은 '밀은 밀인데 찰기가 없는 밀'이란 뜻이다. 그러나 밀과 메밀은 전혀 다른 종이다. 밀은 볏과에 속하고, 메밀은 마디풀과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더라도 꽃이나 생김을 보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본디 더 흔히 재배되는 것은 메밀인데 어찌하다 밀의 동생과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메밀'은 '모밀'이라고도 하는데 메밀 낟알이 모가 나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국수..

쌀 이외에 보리, 밀 , 콩, 옥수수 등 모든 곡물은 잡곡일 뿐이다.

인간이 재배하는 여러 농작물 중 곡물은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주로 재배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곡물은 다른 어떤 작물보다도 중요시 되는 작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이러한 곡물 사이에도 엄연한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맨 윗자리는 벼와 보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은 밥을 지을 수 있는 곡물이다. 둘 중에서 으뜸은 벼이고 부족할 때 보리를 섞는다. 밀은 가루를 내어 가공을 하니 밥이 될 수 없고 다른 것들은 밥을 지을 때 섞을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밥을 짓지는 않는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일컬을 때 '숙맥 菽麥' 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콩 菽'과 '보리 麥'인데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

나를 감동시킨 그림, 명화

얀 페르메이르(Jan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 평범한 일상이 엄청난 영감을 주는, 상상력을 자극받고 싶을 때 보는 그림으로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지닌 그림이다. 고유의 의상을 입은, 상상속의 이국적인 소녀를 가슴 높이로 그린 트로니(Tronie) 초상화이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소녀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슬퍼보인다. 눈동자와 입 그리고 눈꼬리의 모호한 조화가 그림의 해석을 다양하게 하고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브룅(Elisabeth Louise Vigee Lebrun)의 「자화상」 1790 35세였던 자신을 순수한 소녀로 이상화해서 그린 자화상으로, 다재다능한 재주꾼의 얼굴을 느낄 수 있다. 자화상에는 한 손 가득 붓과 ..

펌 글 들 2020.12.14

두부는 사찰에서 만들었다. 조포사와 연포탕을 보면...

두부는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에 두부가 전래된 것은 중국과 불교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통일신라시대 즈음인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부터 두부가 서민층의 음식인 것은 아니었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에 두부는 사찰에서 부처님을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찰에서 주로 두부를 만들었다. 당시 사찰은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부가 집중돼 있었기에 음식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 자연히 두부 제조법도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두부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쓴 로 알려져 있다. 이 문헌은 '지금 해야 할 일 28가지'라는 뜻으로, 신하가 왕에게 올린 건의문이다. 이 문헌에서 최승로는' 행인에게 미음, 술, 두붓국으로 보시하는 일은 체통이 서지 않은 일이니 삼가라'고 왕에게 건..

옥수수, 콩 2020.12.11

싯다르타와 죽 그리고 깨달음

10여 년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죽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보릿고개를 지낸 그 시대 어르신이 다 그렇듯이 '사흘에 피죽 한 번도 못 먹을 정도'로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뭐라도 먹을거리가 생기면 물을 가득 부어 국 같은 죽을 만들어 가족을 먼저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전복죽이나 닭죽처럼 호사스러운 죽 앞에서도 '난 밥이 좋다'라며 밥을 고집하셨다. 요즘은 죽이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고 미식가도 즐기는 다양한 맛의 죽이 나오지만, 대체로 예전 어른에게 죽은 그다지 긍정적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용적인 말을 보면 '죽을 쒔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죽도 밥도 아니다'는 식의 부정적 의미가 많다. 한국전쟁을 겪은 비참한 시절의 식생활을 대변하는 ..

벼, 쌀 2020.12.11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언급된 농업혁명 속 밀 이야기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마지막으로 호주와 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대략 1만 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되면서 야생 동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렵채집인은 농부가 되었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시작은 느렸고 지리적으로..

인류에게 농경술을 가르쳐준 신 데메테르, 널리 퍼뜨린 트리프톨레모스

대지의 생산력이 의인화된 존재 데메테르 농경의 신으로서 데메테르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농경기술이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데메테르(로마신화에서는 세레스 ceres)는 트리프톨레모스에게 곡물 씨앗도 주고 곡물 재배 기술도 가르쳐주었다. 트리프톨레모스는 이 경작술을 온 세상에 전했다. 이처럼 인류에게 농경술을 알려준 존재이다보니 화가들은 데메테르를 형상화할 때 그녀의 머리에 곧잘 밀 이삭으로 만든 관을 씌워주었고, 손에 곡물과 횃불 혹은 낫을 들려주었다. 그런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 그녀를 찬미했고 감사를 표했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가 장앙투안 바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의 「데메테르(여름)」에서 우리는 그 전형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

청양 방기옥 고택 향원재와 한옥카페

청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칠갑산의 콩밭매는 아낙네와 천장호의 출렁다리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있으니 방기옥 가옥 향원재와 한옥 카페 지은이다. 그런데 저 콩밭매는 아낙네는 왼손잽이 네.... 청양 칠갑산 자락에 있는 천장호의 출렁다리는 진짜로 출렁거린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분은 후덜덜덜 건너야 한다. 예당호 출렁다리보다 백배 천배는 더 출렁다리 같고, 천장호 둘레에 데크로 산책로가 나 있으며 소원바위도 있다. 천장호에서 방기옥 고택까지 약 20km이고, 가는 길에 대치터널을 지나면 돌솥 비빔밥, 청국장, 구기자 막꼴리 등으로 유명한 맛집 바닷물 순두부 식당이 있다. 방기옥 가옥은 청양시내에서 남양면 방향으로 약 7km 떨어져 있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이 한옥카페 지..

주정 이야기 2020.11.29

청양이 구기자 시배지가 된 박관용 할아버지 이야기, 구기설

枸杞設(구기설) 1922년 임술 가을 내가 임시로 거주하는 公山(공산)의 콩˙마의 두메산골 토동마을. 주변 산들이 하늘에 떠 있는 듯 높고 계곡물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곳에 허름한 집 몇 칸을 사서 살았다. 문 밖에 줄기는 흰색, 잎은 푸른 관목이 있었는데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산수유 같고, 붉고 윤기나는 것이 볼 만하였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구기자」란 것으로 약용으로 쓰인다 하였다. 말려서 모아 팔 수 있다기에 그해 수익을 물으니 20량은 될 듯한데 귀할 때는 엽전이 한 꿰미요 흔하더라도 7·80 文(문)은 된다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투리 땅에서도 그 이익이 이와 같으니 만약 재화를 늘리려면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하겠는가? 곧바로 본초강목을 찾아 규명하니 신령스럽고 진기한 약재라 ..